러시아·중국, '백신 외교 전쟁' 질주…'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린다'

러시아·중국, '백신 외교 전쟁' 질주…'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린다'

chars 0 1,089 2021.02.11 10:55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 외교'가 거침없이 뻗어가고 있다.

전 세계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백신 구매 경쟁 속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밀려 초기에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을 위해 전폭적인 백신 지원에 나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편될 세계 질서에 대비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 세기 만에 '스푸트니크 쇼크' 재현?…러, 세계 최초 백신 등록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첫 백신 러시아 스푸트니크V 10만 회분이 다음주 들어온다"며 의료진을 시작으로 한 순차적인 국가 접종 계획을 발표했다. 

정치·외교보다 우선 현안인 팬데믹 속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엄연히 현직 대통령인 마두로 대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화 상대'로 지목하며 '레토릭'만 반복하는 사이, 러시아는 더욱 결속을 다진 것이다.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2021년 1월 28일(현지시간) 엘 알토 국제공항에 도착한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 박스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방 선진국이 스푸트니크V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효과 91.6%의 3상 결과가 지난 2일 국제 의학지 '랜싯'에 게재되면서부터지만, 사실 러시아는 스푸트니크V를 작년 8월 11일 세계 최초로 백신으로 등록했다. 1957년 세계 최초 발사에 성공해 미국에 '쇼크'를 안긴 구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이름을 땄다.

영하 20~80도의 초저온 냉동을 필요로 해 개도국에겐 '너무 비싸고 까다로운' 미국 모더나·화이자 백신과 달리, 2~8도의 일반 냉장온도로 유통·보관이 가능한 '2회분 1세트 20달러'의 특장점을 자랑한다.

스푸트니크V는 이미 23개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다. 중미 멕시코와 남미 볼리비아·파라과이·아르헨티나, 중앙아시아 몽골·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중동 파키스탄·팔레스타인·아랍에미리트연합(UAE)·아르메니아·이란, 동유럽 헝가리·세르비아 등에서 접종이 예정 또는 진행 중에 있다. 모두 미국과 캐나다, 유럽 선진국의 구매 경쟁에 밀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다.

스푸트니크V의 개발과 마케팅을 후원해온 러시아 국부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프 이사는 "러시아 정부는 백신을 개도국에 공급하는 데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능력이 우수한 한국, 중국, 인도 제약사들과 협상 중으로, 올해 총 5억 명분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시노백·시노팜, 대량 유통으로 '뒷심' 발휘 : 중국 백신 시노백·시노팜은 물량 경쟁의 승자다. 지난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시노백 공개 접종을 시작으로 중국 백신은 개도국 백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남미 브라질·볼리비아·칠레, 동유럽 우크라이나, 아시아 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을 포함해 시노백은 이미 12개국에 3억5000만 회분 이상 수출 계약을 맺었고, 시노팜도 11개국에 1억9400만 회분 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 종류 백신을 대량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스푸트니크보다 공급량에서 앞선다.

심지어 캄보디아에 100만 회분을 기증하는 등 백신 확보가 어려운 국가에 인도적 지원까지 나서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8일 정례 언론 간담회에서 시노백과 시노팜을 포함해 "현재 53개 개도국에 백신을 지원하고 있으며 수출국은 총 22개국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내달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이 이뤄지면 국제 백신협력 프로그램 '코백스(COVAX)'를 통한 공급량이 대폭 늘 전망이다. 현재 코백스에서는 올 상반기 중 예정한 145개국 3억3720만 회분 공급량 거의 전량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인데, 효과성과 공급 지연 논란에 직면해 하반기에는 중국 백신이 주도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최대 명절인 춘절(중국의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생산 능력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시노백은 오는 11일 시작하는 일주일간의 춘절 연휴 내내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한다. 연간 10억 회분 이상 생산 규모를 갖춘 제2공장이 이달 가동에 들어간 데 이어 벌써 제3 공장 건설도 준비하고 있다. 

시노팜의 상황도 비슷하다. 양샤오밍 시노팜 대표는 "올해까지 생산 규모를 10억 회분 이상으로 늘릴 것"이라면서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높은 품질 보장도 더 빨리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러가 백신 외교 승자"…외신들도 주목 : 이러한 러시아와 중국의 약진에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의 코로나19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그리고 전 세계 각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개도국에 저렴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제공하며 백신 외교 행진을 가로채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자지라는 "중동과 러시아가 백신 외교를 통한 소프트파워 강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편성될 지역 질서를 대비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적인 과학적 지도자 이미지로 영향력과 위상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는 손에 피를 묻히고 독재자들만 지원하는 국가로 보여지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캐나다 CBC는 "백신 보급을 통해 우방과 영향력을 얻기 위한 '백신 외교 전쟁'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독주하고 있다"며 "백신외교에서 신기하게도 서방세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백신이 정부 주도로 개발된 반면, 서구 백신은 민간 주도로 개발된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캐나다처럼 자국민 필요량보다 넘치는 분량의 백신을 주문한 국가들이 개도국과 백신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로 백신 외교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중국과 러시아 백신은 처음에는 서구에서 생산한 백신보다 열등하다는 인식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러한 인식은 한편으론 이들이 권위주의 국가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들 백신이 믿을 만하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전 세계 공급 문제를 고려해 접종 여부를 심각하고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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