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드리운 ‘플랫폼 노동자’의 그늘

전 세계에 드리운 ‘플랫폼 노동자’의 그늘

chars 0 1,196 2020.12.15 09:43
중국인 천샤오쥔(43)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국외 거주 중국인들을 겨냥한 중국계 음식 배달 스타트업 ‘헝그리 판다’의 플랫폼 노동자로 일했다. 천은 지난 9월29일(현지시각) 시드니 외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나섰다가 버스에 치였다. 중국에 떨어져 살던 천의 아내 웨이리훙은 천의 숙소 동료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아내의 간절한 바람에도, 병원으로 옮겨진 천은 이튿날 숨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방송과 영국 <가디언>에 소개된 천의 사연은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음식 배달을 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외국인 노동자의 전형적 사례로 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기업들이 연일 폭발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노동자와 사업자 어느 한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한 천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짙어지고 있다.
미국 음식 배달 스타트업 ‘도어대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날인 지난 9일 도어대시 배달원이 자전거로 뉴욕 맨해튼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음식 배달 스타트업 ‘도어대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날인 지난 9일 도어대시 배달원이 자전거로 뉴욕 맨해튼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동자 대접 못받는 플랫폼 노동자
중국 산시성 출신 천은 15살 딸과 8살 아들이 있다. 중국에서는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했으나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다. 천은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에 와서 음식 배달 일을 시작했다. 천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선진국이며 법치국가이고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믿었다고 아내인 웨이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말했다. 천은 타국에서 음식 배달로 번 돈 대부분을 중국에 송금했다. 이 돈으로 중국의 아이들과 아내뿐 아니라 자신과 아내의 부모님까지 부양했다.
천의 죽음 뒤 플랫폼 기업 노동자로서 그가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이 알려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운송 노조가 음식 배달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비용을 제하고 배달원 수입을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10.42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8600원) 정도였고, 응답자 73%는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달 도중 사고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천의 사망 이후, 헝그리 판다의 침묵을 보다 못한 그의 이웃이 모금운동을 벌여 천 가족의 오스트레일리아 입국 비용 5만달러를 모았다. 헝그리 판다는 그제야 천 아내의 항공비와 장례비 정도를 지원했고, 이웃이 모금한 돈은 천의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천이 거리에서 숨진 9월 무렵부터 최근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천을 포함해 적어도 5명이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음식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9월27일 인도네시아 출신 우버이츠 배달원 데데 프레디(36)가, 지난달 23일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우버이츠 배달원이 사망했다. 10월에는 미국계 도어대시에서 일감을 받아 배달을 나섰던 말레이시아 출신 초우 카이 시엔(36)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는 시드니 외곽에서 우버이츠를 통해 맥도널드 음식을 배달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비조이 파울(27)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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