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곳 별로 없지만 ‘아랍어’ 수능 응시 매년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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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21:05
중동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오일머니’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중동은 잘 몰라도 두바이는 다 안다. 어찌됐든 8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중동 개발에 참여하면서 ‘오일 달러’를 벌었고 그들에게는 다소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특히 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지난해가 수교 40주년이었다. 코로나19가 세계적 유행으로 번진 지난해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에 한국산 진단키트 물량을 우선 배정하는 등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온라인 구매 사이트만 봐도 약 1000종이 넘는 우리나라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한류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접한 뒤 우리나라 연예인의 화장법을 비롯해 우리의 말과 문화를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이 중동에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에 덩달아 우리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전년 대비 무려 13%나 껑충 뛰어올랐다. 중동으로 들어가는 우리 화장품의 수출액은 최근 5년간 꾸준한 상승세에 있다. 올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시장 호황까지 더해지며 더욱 성장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하지만 막상 국내에서 중동으로 진출하려 하면 낯선 문화와 언어가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나 미국, 유럽과 달리 중동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과 정보를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도 장벽이다.
■거꾸로 가는 국내 아랍어 교육 = 중동 지역과 관련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아랍어’에 대한 인기는 가히 최고(?) 수준이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랍어를 구사하는 실력이 뛰어나서 선택하는 일반적인 선호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랍어 실력은 낮지만 경쟁자들의 실력도 특출한 경우가 드물어 이른바 ‘로또’를 바라는 수험생들의 과목 선택이 집중된 탓이다.
수능에서 아랍어는 과목 자체의 평균 점수대가 워낙 낮기 때문에 비교적 다른 과목보다 1등급을 받기 쉽다. 수험생 입장에서 최소 학습 시간만 투자해 1등급을 받을 수 있기에 ‘가성비’ 좋은 과목으로 아랍어만큼 좋은 제2외국어가 없는 셈이다. 심지어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찍어도 4~5등급은 맞는다”는 말이 돌아 씁쓸한 형국이다.
이런 인식이 수험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아랍어는 해마다 가장 많은 응시 지원율을 보이는 제2외국어 과목으로 몇 년째 자리하고 있다. 학교에서 정식 과목으로 채택해 가르치는 과목으로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압도적이지만 정작 수능에서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은 과목은 ‘아랍어’인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으로 ‘아랍어’ 등 국내 외국어 학과 여건 후퇴 = 전문가들은 수능에서 ‘아랍어’를 선택하는 응시자가 많다면 이제는 국내 교육 여건을 확충하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능 ‘아랍어’ 과목 난이도에 대한 형평을 맞출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아랍어 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선 고등학교에 ‘아랍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에도 교원 양성을 위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랍어를 활용할 줄 아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교원 양성 시스템을 제때 갖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국내 대학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정부 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외국어 교육’ 학과가 줄어드는 것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이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대학에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학생 충원율’을 중요 지표로 이를 채우지 못한 대학에는 감점하고 심한 경우 재정지원까지 끊는 방식이다.
취업에 유리한 학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충원율’이 저조한 기초학문 학과들은 이러한 정부의 방침 아래 점차 규모를 줄여나가다 급기야 폐과를 겪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외국어 교육과 관련한 학과들 역시 같은 처지다.
지난 2016년 우리 정부는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전 세계 언어 중 53개를 ‘특수외국어’로 지정했다. 아랍어 등 중동·아프리카 지역 언어 12개, 카자흐어 등 유라시아 언어 7개, 힌디어 등 인도·아세안 언어 14개, 폴란드어 등 유럽 언어 18개, 브라질어 등 중남미 언어 2개 등이 포함됐다.
이를 기준으로 특수외국어에 해당하는 학과가 개설된 4년제 대학은 지난해 총 8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한국외대가 27개 학과(입학정원 856명)로 가장 많았고 부산외대는 9개 학과(입학정원 315명)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단국대와 청운대, 조선대, 명지대, 서울대, 영산대가 특수외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특수외국어 교육 강화 위한 지원 절실 =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아랍어를 포함한 15개 언어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외대와 부산외대, 단국대-청운대 컨소시엄 등 3곳을 전문교육기관으로 지정하고 ‘1단계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와 대학 개편 등 변화에도 언어별 학문 후속세대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국외대 등 3개 전문교육기관은 일반대학원과 통번역 대학원에 ‘학사+석사 연계과정’을 개설하고 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사업 예산을 통해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여러 체계도 갖출 수 있었다. 현재 전문교육기관 3곳은 △아랍어 △우즈베크어 △이란어 △터키어 △포르투갈어·브라질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힌디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어 △몽골어 △미얀마어 △베트남어 △크메르어 △태국어 △스와힐리어 등 15개 언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오종진 한국외대 특수외국어교육진흥원장은 “외국어 교육은 국가 전략을 발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아랍어와 같은 특수외국어 교육의 경우 이를 실행할 전문가, 피교육자인 학생, 교육의 매개체 등에 필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지원과 협조가 더 절실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내년 ‘2차 특수외국어 교육 사업’… 이탈리아어·라오스어, 전문교육기관 추가 = ‘특수외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 범위가 내년부터 더 넓어진다. 한국 문화 등 K-콘텐츠를 세계에 전파할 번역 인재 등 분야별로 특화한 특수외국어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특수외국어로 지정하는 언어를 늘리고 전문교육기관 역시 추가로 지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8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6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제2차 특수외국어교육 진흥 5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번 계획은 국제교류협력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다문화 가정 증가 등 인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언어교육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어와 라오스어 등이 신규 특수외국어로 지정되는 등 지원 대상이 확대된다. 또 특수외국어 전공을 확대하기 위해 대학원을 중심으로 ‘인접어 연계전공’을 지원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언어적 유사성이 높은 태국어와 라오스어,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 이란어와 다리어(아프가니스탄 말)의 경우 대학원 전공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다.
전문교육기관 수도 늘어난다. 지난 1차 특수외국어 교육 사업 지원을 받던 한국외대와 부산외대, 단국대-청운대 컨소시엄 등 3곳의 전문교육기관들이 2차 사업 때에도 재지정을 받게 되면서 이들과 함께 사업을 수행할 신규 기관을 추가로 선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