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리스 보며 재택근무하는 당신…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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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6 16:19
4차 산업혁명은 들어봤어도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란 단어는 처음 봤다. 그럼 지금까지 글로벌라이제이션에도 1·2·3차가 있었다는 말인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구분 짓는 기준은 뭔가.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다뤘다는 마크 레빈슨의 신작 `Outside the Box(컨테이너 상자 밖)`를 집어든 것은 순전히 이런 각종 의문 때문이었다. 레빈슨은 2008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저명 인사들에게 극찬받았던 베스트셀러 작품 `The Box`의 저자다. 책 제목에 들어간 박스는 항구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항구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어떻게 글로벌 교역량을 폭증시키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촉발시켰는지를 다뤘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2020년, 저자가 들고 나온 책은 `컨테이너 상자 밖`의 이야기다. 제조업 이외의 다른 산업, 즉 서비스업에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The Box`가 3차 글로벌라이제이션, `Outside the Box`가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그럼 1차 글로벌라이제이션부터 조금 찬찬히 살펴보자. 레빈슨이 주장하는 1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1940년대에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1970년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는 앞으로 나아갔다. 1986년을 기준으로 보면 공산품 교역량은 1950년에 비해 15배나 폭증했다. 수요가 늘면서 공산품 가격은 급등했고, 유조선 영향으로 원유는 걸프 해협에서 유럽·일본·북미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원유 수출국들은 뉴욕·런던·도쿄 등 전 세계 금융도시에 돈을 맡겼고 이를 밑천으로 금융시장은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레빈슨이 본 2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79년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등장했고, 이듬해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자유시장경제 원칙이 강화됐다. 1982년 혼다자동차가 미국에 처음으로 조립공장을 세웠을 때 엔진,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수천 마일 밖에서 적시에 조달해올 수 있다는 것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2차 글로벌라이제이션기에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지만 해외투자는 선진국에만 집중됐다. 저개발 국가는 더 많은 부채를 조달하면서도 원유나 커피 등 원자재를 선진국에 수출해야 했다. 선진국의 수탈경제는 2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1980년대 후반 장거리 공급망의 등장은 3차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작이었다. 더 이상 기업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연기금·영국 기관투자가·중동 정부자금이 공동 대주주인 회사가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생산 공장을 두고 제품을 미주 지역에 공급하는 식이다.
이 시기 글로벌 교역량 증가는 세계 경제 성장보다 3배 이상 빨랐다. 심지어 2001~2008년 7년간 공산품 교역량은 120%가 늘어났는데, 이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이 7년간 북미(미국·캐나다) 제조업 일자리 8개 중 1개가 사라졌고, 영국에서는 4개 중 1개가 없어졌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역풍이었다.
사람들은 저렴한 중국산 공산품에 취해 글로벌라이제이션 역풍을 못 느꼈지만 컨테이너 박스의 등장과 부작용도 예견된 일이었다. 규격화된 박스를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컨테이너 박스가 등장하면서 처음엔 부두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 일자리가 사라지더니 해운업체, 육상 수송업체들과도 마찰이 생겨났다. 컨테이너 박스가 상용화되면서 전 세계 교역이 늘자 선진국 공장은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떠나갔다. 블루칼라 일자리는 사라지고 불평등은 심화됐다. 급기야 이민자들을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후반 이후 나타난 게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3차 글로벌라이제이션기에 제조업이 공동화되면서 블루칼라 일자리가 사라졌다면,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기에는 서비스업이 공동화되면서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3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시작됐다면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컨테이너 박스 밖, 이를 움직이는 프로그램에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인공지능(AI)만 있으면 금융시장 분석이나 보고서 쓰기 정도는 저개발국에서도 가능하다. 화이트칼라의 아웃소싱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역풍은 여기에 있다. 화이트칼라의 사무실이 사라지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임금이 축소된다면 뉴욕 컨설팅 회사는 인도 뭄바이로 넘어가고 런던 회계 사무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이전되고, 실리콘밸리 코더들이 필리핀으로 넘어간다면 서비스업의 가격이 떨어지고 미국·영국 고임금 근로자들 임금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에 중국산 저가(차이나 프라이스)가 있다면 서비스업에 `필리핀 저가` `뭄바이 저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지난 10여 년간 중국 덕분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억제됐다면, 앞으로는 어디서 인플레이션 억제 요소가 나타날지 모른다.
저자는 `4차 글로벌라이제이션` 문턱 앞에 선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겨 놓는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코로나19 팬데믹이나 보호무역주의에 가려져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허구에 가깝다고 본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형태를 달리할 뿐 더 빨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미국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지금은 집에서 넷플릭스를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끝난 후 수많은 나라에서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생산하게 되고 본인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할 참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