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딩카지노 도박왕과 파텍 필립 시계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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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12:42
2019년 7월, 중국 전자상거래 타오바오에 개설된 법원 경매시장에 ‘파텍 필립’ 손목시계(제품명 5002p-001) 한 점이 출품됐다.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와 함께 세계 3대 명품시계로 꼽히는 파텍 필립은 점당 수천만~수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당 파텍 필립 시계 역시 경매 시초가는 720만위안(약 12억원)으로 정해졌다. 감정가인 800만위안(약 13억원)보다 1억원가량 낮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워낙 높은 가격이라서 한 차례 유찰된 후 한 달 뒤 진행된 2차 경매에서 648만위안(약 11억원)에 낙찰됐다.
화제를 모은 파텍 필립 시계의 원 소유주는 청한(程瀚) 전 중국 안후이성 사법청 부청장. 안후이성 벙부(蚌埠)시 인민검찰원과 중급인민법원에 따르면, 청한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안후이성 성도인 허페이(合肥)시 공안국장, 부시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현지에서 부동산 개발, 호텔 등을 운영하는 기업인 양(仰)모씨의 부탁을 받아 각종 경영상 편의 등 뒤를 봐주는 대가로 2014년 4월 해당 기업인의 자택에서 파텍 필립 시계를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한이 받은 손목시계의 당시 시가는 1300만홍콩달러(18억원)에 달했다.
2016년 5월, 중국공산당 기율검사위 조사과정에서는 청한이 파텍 필립뿐만 아니라 카르티에, 피아제, 프랭크 뮬러, 튜더 등 명품시계를 ‘대여’ 명목으로 빌려 차고 다닌 사실도 드러났다. 개중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여성용’ 시계도 있었다.
결국 2018년 10월, 안후이성 고급인민법원은 총 1795만위안(약 30억원)에 달하는 뇌물수수를 인정, 징역 17년에 벌금 400만위안(약 6억원)의 형을 최종 확정해 그의 손목에 시계 대신 쇠고랑을 채웠다. 파텍 필립 손목시계가 법원 압류 경매품으로 나온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파텍 필립 건넨 양즈후이 회장
이 과정에서 고위 관료인 청한에게 파텍 필립 시계를 건넨 기업인 역시 입방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해당 기업인은 바로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를 운영하는 란딩그룹 양즈후이(仰智慧) 회장. 안후이성 허페이에 본사를 둔 란딩그룹은 제주도 최초 복합리조트(IR)인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의 운영사다. 랜딩카지노는 제주도 최대(면적 5581㎡) 카지노로, 한국 파라다이스와 일본 세가사미가 인천 영종도에서 합작 운영하는 인천파라다이스시티 카지노(8726㎡)에 이은 국내 2위 외국인 전용 카지노다.
파텍 필립 시계 사건 이후 한때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를 무대로 ‘중국 최대 도박왕’을 꿈꿔온 양즈후이 회장과 랜딩카지노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양즈후이 회장은 2014년 말레이시아 카지노 기업 겐팅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 옛 하얏트리젠시호텔(현 더쇼어호텔)에 있던 카지노를 인수하면서 도박면허를 취득했다.
이어 2018년 3월 제주신화월드로 사업장을 옮겨 제주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개설했는데 그 직후부터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해 8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공항에서 체포된 뒤 행적을 감췄다가 약 3개월 만에 풀려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제주신화월드 내 랜딩카지노 VIP 금고에서 보관 중이던 현금 145억여원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도 터졌다. 지난 1월 5일, 란딩그룹의 홍콩 투자법인인 란딩인터내셔널이 “지난 1월 4일, 제주도 랜딩카지노에서 보관 중이던 145억6000만원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다”며 “한국 경찰에 신고했고 현재 조사 중”이라고 공시를 내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주가조작 혐의도 조사 중
이와 별개로 양즈후이 회장이 중국 증권당국으로부터 자신이 대주주 겸 총경리(대표)로 있는 기업의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양즈후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잠수장비 기업 ‘중잠(中潛)’이 주가조작에 연루된 사건으로, 중잠 측은 지난해 12월 14일 “양즈후이 선생이 증권시장 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중국증감회는 중국증권법 관련 규정에 따라 양즈후이 선생을 입건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즈후이는 2019년 9월, 중잠의 지분 24%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는데, 인수후 약 1년간 해당기업의 주가가 20배가량 폭증한 것이 주가조작 혐의의 배경이 됐다. 란딩인터내셔널 측도 다음날인 12월 15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양즈후이가 해당 조사와 란딩의 운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진화하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란딩인터내셔널이 랜딩카지노에서 145억여원의 자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공시한 날(1월 5일)은, 양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중국증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발표를 한 날로부터 약 보름여 뒤다. 제주경찰의 수사에 따르면, 사라진 145억여원 중 일부로 보이는 126억원의 현금다발이 랜딩카지노 내 다른 금고와 제주도 모처에서 발견됐으나 아직 나머지 돈의 행방과 금고관리인의 행방은 여전히 추적 중이다. 양즈후이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와 145억여원 사이의 상관관계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텍 필립 시계 건을 비롯해 양즈후이 회장과 랜딩카지노가 각종 구설에 오르면서 양즈후이 회장의 ‘중국 최대 도박왕’이라는 꿈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양즈후이 회장은 제주도 카지노를 인수하며 도박업에 진출한 이듬해인 2015년, 영국 런던에 있는 ‘레스 앰배서더클럽 카지노’를 인수하는 등 도박업에 열의를 보여왔다.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 개장 직전인 2017년 2월에는 제주대에 10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쾌척해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학교 경내에는 그의 흉상도 건립됐다.
하지만 2018년 3월 제주도 랜딩카지노 개설 즈음에 불거진 ‘파텍 필립 사건’으로 중국 VIP들이 출입을 꺼리면서 수익이 기대만큼 높지 못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의 복합리조트 단지인 엔터테인먼트시티에 건립하려던 카지노 리조트가 착공식 당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지시로 전격 중단되는 등 좌절이 거듭됐다. 지난해 2월부터는 코로나19로 제주도 무비자 입도(入島)가 잠정 중단되는 등 한·중 간 하늘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란딩그룹의 최대 자금줄인 제주신화월드와 랜딩카지노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상태다.
제주도 관광정책과에 따르면, 2019년 172만명에 달했던 제주도 입도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20만명 선으로 급감했다. 자연히 제주신화월드 내에 추가로 건립 예정이던 포시즌스호텔과 라이언스게이트 무비월드의 건립도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란딩인터내셔널은 지난해 8월 상반기 영업보고서를 발표하고, 2020년 상반기 7억9223만홍콩달러(약 112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중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제주신화월드에서 기록한 상반기 적자만 5억3294만홍콩달러(약 755억원)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